글로벌 AI 경쟁의 현주소
2025년 현재,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는 경이롭습니다. OpenAI의 GPT-4, 구글의 Gemini 2.5, 앤트로픽의 Claude 3.7 등 초거대 AI 모델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I 인프라 구축에 5000억 달러(한화 약 718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AI가 이제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IT 강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에서는 왜 아직 이런 수준의 초거대 AI 파운데이션 모델이 나오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AI를 외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천문학적 투자 격차: 자본의 현실
글로벌 빅테크의 압도적 투자 규모
초거대 AI 모델 개발은 더 이상 소프트웨어 기술 경쟁이 아닙니다. 천문학적인 자본과 인프라를 동원하는 산업적 규모의 ‘군비 경쟁’으로 변모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5 회계연도에 약 940억 달러를 AI 인프라에 투자할 계획이며, 구글은 750억 달러, 아마존은 1,000억 달러 이상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xAI는 2025년에만 약 130억 달러를 지출할 예정으로, 이는 매달 10억 달러를 소진하는 엄청난 속도입니다.
한국의 현실적 한계
반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2024년 한국의 AI 분야 전체 벤처 투자액은 약 7억 2,700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미국의 AI 스타트업 앤스로픽이 단일 라운드에서 조달한 4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국내 VC들은 단기적인 수익 실현 압박이 크고, 수년간의 적자를 감수하며 기술 개발에만 매진해야 하는 파운데이션 모델 스타트업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재 병목 현상: 두뇌 유출의 심각성
절대적 인재 부족
최고 수준의 AI 인재 확보는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의 핵심 변수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이 분야에서 심각한 양적, 질적 격차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국의 AI 전문가 수는 약 2,551명으로, 18만 8,300명의 미국이나 2만 2,191명의 중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이부분에 있어서는 인구수 등에 비례해서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한국 교육과 문화에 문제일 수 도 있습니다. 한국은 의과대학 진학 선호 현상으로 인해 과학기술 분야 인재의 감소와 이탈이 많은 것은 현실입니다.
컴퓨팅 인프라 및 데이터의 제약
GPU 확보 경쟁의 현실
현대 AI 모델 학습은 고성능 GPU의 대량 확보에 달려 있습니다. NVIDIA의 H100, B200과 같은 최상위 GPU는 전 세계적으로 공급이 부족하며, 그 배분은 단순한 시장 논리를 넘어 지정학적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1만 개의 GPU를 확보하려는 계획은 국가적 차원에서는 큰 규모이지만, xAI가 20만 개의 GPU로 구성된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 규모의 차이가 명확합니다.
단일 언어 데이터의 한계
파운데이션 모델의 성능은 학습 데이터의 양과 질에 의해 결정됩니다. 한국 모델들은 주로 한국어 데이터에 집중하여 학습하는데, 이는 한국 문화에 특화된 ‘주권 AI’를 개발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다양한 언어와 문화권의 데이터를 학습한 글로벌 모델에 비해 일반적인 추론 능력이나 다국어 처리 능력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숨겨진 강점들
반도체 스택과 온디바이스 AI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글로벌 AI 경쟁에서 독보적인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강력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AI 가속기의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2024년 기준 50% 이상의 압도적인 점유율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드웨어 경쟁력은 클라우드 기반의 초거대 AI 경쟁을 넘어, ‘온디바이스 AI’라는 새로운 전장에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 스마트폰, 가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는 제조 강국으로서, 고효율·저전력 AI 반도체와 최적화된 소형 AI 모델을 자사 제품에 통합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버티컬 전문성
한국은 특정 산업 분야에서 오랜 기간 축적해 온 깊은 전문 지식과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제조 및 로보틱스 분야에서 LG이노텍의 ‘드림 팩토리’와 같이 AI를 도입한 스마트 팩토리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루닛, 뷰노와 같은 의료 AI 기업들이 의료 영상 분석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으며, 이는 양질의 의료 데이터와 우수한 의료진, 그리고 첨단 기술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결론: 다양한 제약들이 존재, 쉽지 않은 도전
막대한 투자 규모, GPU 인프라의 부족은 한국이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데 제약을 만드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투자와 우리나라 기업의 과감한 투자가 있다면 어쩌면 국산 파운데이션 모델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를 해보지만 범용적인 대형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반대로 반드시 범용적인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을 할 필요는 없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신 강점을 살린 온디바이스 AI 분야에서의 선도를 통해 차별화된 AI 생태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결국 AI 경쟁에서는 ‘큰 모델‘을 만든는 것이 아니라 ’유용한 가치’를 제공하는가 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범용적으로 누구나 쓸 수 있는 ChatGPT 같은 AI 모델이 화두가 되었지만 실제 이 AI 모델을 100% 활용하는 사람은 아직도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 사람들에게 특화 영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영역을 구축한다면 ‘게임 체인저‘ 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