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도 숙제가 있다고?” 아이가 들고온 스케치북을 보면서 말했다. 기자가 되어 ‘우리 동네 소개하기’를 발표하는 숙제였다. ‘우리 몸의 기관 설명하기’ 같은 주제도 있었다. 몇 년 전이라면 도화지에 그리고 오리고 붙이느라 사실상 엄마 아빠 숙제가 됐을 일이다.
이번엔 ChatGPT를 켰다. 발표 자료를 만드는 데 30분이 채 안 걸렸다. 그런데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숙제를 빨리 끝냈다’가 아니다. 그렇게 아낀 시간을 아이와 보내는 데 썼다는 것이다. AI한테 숙제를 떠넘기자는 글이 아니라, 손 가는 일은 AI에 넘기고 사람이 할 일에 집중하자는 후기에 가깝다.
AI를 켜기 전에, 아이 이야기부터 들었다
좋은 발표 자료의 출발점은 ChatGPT가 아니라 아이의 입이다. 프롬프트를 아무리 잘 써도 채울 내용이 없으면 결과물은 뻔해진다.
그래서 노트북을 열기 전에 먼저 물었다. “우리 동네에서 자랑하고 싶은 게 뭐야?”, “어디가 제일 좋아?” 이 대화가 사실상 발표의 뼈대다. AI를 쓰든 안 쓰든, 무엇을 말할지는 아이 머릿속에서 나와야 한다.
어떻게 GPT를 활용했는지는 “우리 동네 소개하기”를 예시로 설명한다.
ChatGPT로 발표 이미지 만들기
‘대화로 내용이 정리됐으면 이제 그림은 ChatGPT에 맡길 차례다. ChatGPT 이미지 생성(GPT Image, ChatGPT에 내장된 그림 그리는 기능)에 던진 프롬프트는 단순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소개하는 발표 자료를 만들려고 해.
주제는 '우리 동네 소개하기'야. 발표는 아이가 직접 한다.
제목: 서울N타워
텍스트: 밤에 보면 너무 멋있어요
이미지: 2D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귀여운 그림으로 만들어줘
이렇게 한 장씩 만들어 프린트하면 생각보다 그럴듯한 자료가 나온다.

문제는 두 번째 그림이다. 그냥 새로 만들면 첫 장과 그림체가 따로 논다. 그래서 다음 이미지를 만들 때는 “위 스타일을 따라서 두 번째 이미지를 만들어줘”라는 한 줄을 앞에 붙였다. 같은 화가에게 두 번째 그림을 맡기는 셈이다. OpenAI도 공식 가이드에서 한 이미지를 스타일 기준으로 지정하고 그 화풍을 유지시키는 방법을 안내한다. 덕분에 남산타워, 케이블카, 동네 시장이 한 세트처럼 보였다.
위 스타일을 따라서 두 번째 이미지를 만들어줘.
제목: 남산 케이블카
텍스트: 케이블카를 타고 한 번에 남산타워까지 갈 수 있어요
이미지: 2D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귀여운 그림으로 만들어줘

실제 사진을 넣으면 퀄리티가 올라간다
아이가 매일 보던 장소를 그대로 일러스트로 만들고 싶으면, 구글 이미지 한 장을 첨부하면 된다. 주제는 똑같고 프롬프트 한 줄만 바꾸면 된다.
제목: 서울N타워
텍스트: 밤에 보면 너무 멋있어요
이미지: 첨부 이미지를 참고해서 2D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귀여운 그림으로 만들어줘
상상으로 그린 타워보다, 실제 우리 동네 모습을 닮은 그림이 나온다. 발표를 듣는 다른 아이들도 “어, 저기 가봤다” 하고 반응한다. 공감을 끌어내는 자료가 된다.



발표 스크립트까지 한 번에 뽑기
이미지가 다 모였으면 마지막은 아이가 읽을 발표 대본이다. 앞에서 만든 내용을 그대로 이어서 부탁하면 된다.
지금까지 작성한 내용을 바탕으로 유치원생이 발표할 수 있는 수준의
발표 스크립트를 만들어줘. 처음에 주제와 발표자 이름으로 인사하고,
각 내용을 한 줄씩 설명한 뒤, 마무리 멘트로 끝나게 해줘.
유치원생 눈높이에 맞춘, 짧고 또박또박한 대본이 나온다. 여기까지 하면 그림과 대본이 한 번에 준비된다.
안녕하세요.
저는 ○○○입니다.
오늘 발표할 주제는
우리 동네 철산의 좋은 곳들입니다.
첫 번째는 안양천입니다.
안양천에서는 우리가 신나게 뛰어 놀 수 있어요.
두 번째는 철산도서관입니다.
철산도서관에서는 많은 책들을 볼 수 있어요.
세 번째는 철산역입니다.
철산역에서는 지하철로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네 번째는 광명성애병원입니다.
광명성애병원은 우리가 아플 때 빨리 낫게 해줘요.
우리 동네에는 재미있고 고마운 곳이 많이 있어요.
저는 우리 동네가 참 좋아요.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 — 아낀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가
이번 숙제의 핵심은 세가지이다. 아이와 먼저 대화해 발표 내용을 정한다. 스타일 유지와 사진 첨부로 자료의 완성도를 높인다. 발표 스크립트까지 같은 대화에서 이어 만든다. 이 네 단계를 따라가면 30분 안에 끝난다.
하지만 진짜는 그다음이다. 도화지 오리고 붙이던 시간을 통째로 아낀 대신, 그 시간을 아이와 대본을 같이 읽고 발표 연습을 하는 데 썼다. 서울대 연구진의 분석을 보면 가족 간 정서적 교감이 높은 아이일수록 또래 관계와 학교 적응이 좋다. 손이 가는 일은 AI가 빠르게 덜어주지만, 아이와 눈 맞추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누구도 대신 못 한다. AI로 숙제를 끝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AI 덕에 생긴 시간을 아이에게 돌려주는 것, 그게 현명하게 쓰는 방법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