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회사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늘 비슷한 말을 듣는다. 한 명은 AI로 혼자 열 사람 몫을 내는데, 회사의 나머지는 그걸 못 따라간다는 것이다. Claude Code를 만든 Boris Cherny가 X에 올린 글에서 꺼낸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같은 도구를 쓰는데 왜 누구는 열 배를 내고 누구는 제자리일까. Cherny는 이 격차를 다섯 단계로 그렸다. 지난 글에서 “AI를 잘 쓰는 건 좋은 질문이 아니라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라는 그의 말을 다뤘다면, 이번엔 그 시스템이 팀 단위로 어떻게 커지는지, 그리고 우리 팀은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를 본다.
30초 요약
– Claude Code 창시자 Boris Cherny가 조직의 AI 활용 성숙도를 0~4단계로 정리했다
– 단계가 오를수록 한 사람이 동시에 굴리는 AI 수가 약 10배씩 늘고, 내 역할은 ‘방향 정하기’로 바뀐다
– 다음 단계로 가는 건 AI를 더 많이 쓰는 게 아니라 걸림돌을 없애고 안전장치를 세우는 일이다
– 여러 명이 각자 AI를 쓰면 노하우가 안 쌓인다. 해법은 팀 공용 규칙을 문서로 만들어 함께 쓰는 것이다
조직 AI 도입 단계란, 팀이 AI를 얼마나 깊이 업무에 녹였는지를 0단계부터 4단계까지로 나눈 성숙도 지도다. 내가 AI를 몇 번 써봤느냐가 아니라, 팀 전체가 AI에 일을 얼마나 믿고 맡기느냐로 칸이 갈린다.
AI 도입에도 단계가 있다고?
있다. Cherny는 조직이 AI를 쓰는 깊이를 0단계에서 4단계까지 다섯 칸의 사다리로 나눈다. 주방 일에 빗대면 감이 잡힌다. 처음엔 좁은 주방에서 혼자 다 하다가, 보조 한 명과 손발을 맞추고, 여러 사람에게 일을 나눠 맡기고, 주방 여러 곳을 총괄하다, 나중엔 방향만 정하면 알아서 돌아가는 식이다. 올라갈수록 하는 일이 ‘직접 칼을 잡는’ 데서 ‘무엇을 낼지 정하는’ 데로 옮겨간다.
막힘
보조
병렬 지휘
감독형 자율
AI 네이티브
단계를 보면 눈에 띄는 규칙이 하나 있다. 칸이 하나 오를 때마다 한 사람이 동시에 굴리는 AI 수가 대략 열 배씩 뛴다. 그리고 내 역할이 ‘직접 하는 사람’에서 ‘시키고 확인하는 사람’으로 옮겨간다. 숫자가 열 배씩 커지는데 관리하는 사람은 한 명 그대로다. 이게 AI 도입이 무서운 지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Cherny가 강조하는 핵심이 나온다. 정답으로 가는 하나의 길은 없고, 각 단계에서 그냥 많이 쓴다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 단계로 가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지금 나를 붙잡는 걸림돌을 찾아 없애는 것, 그리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안전장치를 새로 세우는 것이다. AI 도입은 사용량이 아니라 ‘걸림돌 제거 더하기 안전장치 만들기’의 반복이다. 왜 이게 진짜 중요하냐면, 돈을 더 쓰고 AI를 더 자주 켠다고 저절로 성숙해지는 게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 팀은 지금 몇 단계일까
단계는 굴리는 AI 개수가 아니라, 걸림돌을 없앴는지와 믿고 맡길 안전장치가 있는지로 갈린다. 그래서 자가진단은 “우리가 AI를 몇 개 켜뒀나”가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일하고 있나”를 봐야 한다.
여기서 가장 많이 착각하는 지점이 있다. 창을 여러 개 띄웠다고 상위 단계가 되는 게 아니다. Cherny는 오케스트레이션(여러 작업을 조율하는 지휘)이나 안전장치 없이 세션만 여러 개면 여전히 ‘1단계 흩어짐’이라고 못 박는다. 단계는 켜둔 창의 개수가 아니라 걸림돌을 없앴는지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Cherny는 자기 위치를 공개했다. 본인 글에 따르면 Anthropic은 조직 전체로는 3단계, 본인은 얼마 전 4단계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신 팀은 몇 단계냐”고 되묻는다. 자가진단이 애매하면 이 질문 하나가 도움이 된다. “이거 어차피 사람이 했을 일인가? 그렇다면 몇 시간을 아꼈나?” Cherny는 포춘 인터뷰에서도 AI 비용을 토큰 사용량으로 재는 건 잘못된 잣대이고, 사람이 했다면 걸렸을 시간이 진짜 성과라고 말했다. AI를 얼마나 켰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아낀 시간이 클수록 윗 칸에 가깝다.
여러 명이 따로 AI를 쓰면 왜 꼬일까
각자 AI를 쓰면 당장은 빨라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결과물이 서로 엉키고 노하우가 개인 머릿속에만 남는다. 실제로 현업에서 가장 흔한 모습이 이거다. 팀원들이 저마다 AI 창을 열고 알아서 작업하는 것, Cherny의 기준으로는 창을 아무리 많이 열어도 ‘1단계 흩어짐’이다.
증상은 셋으로 나타난다. 같은 프로젝트를 각자 건드리다 결과물이 충돌하고, 누가 뭘 했는지 추적이 안 되고, 각자 터득한 요령이 팀에 쌓이지 않는다. 사람이 바뀌면 그 노하우는 그대로 사라진다.
해법은 하나다. 개인에게 갇힌 요령을 팀의 공용 자산으로 꺼내는 것이다. Cherny 팀은 이를 CLAUDE.md(AI가 일을 시작할 때마다 자동으로 읽는 규칙 파일)로 해결한다. Cherny가 정리한 활용법을 보면 그는 Claude가 실수할 때마다 다르게 하라고 말하는 대신 규칙 파일에 적거나 스킬로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함정이 있다. 하나의 팀 저장소를 쓰면서도 팀원이 각자 자기 컴퓨터의 규칙 파일만 쓰고 공유하지 않으면, 그 표준은 개인에 갇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규칙 파일을 팀 저장소에 올려(커밋해서) 팀 공용 규칙으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커밋이란, 내 컴퓨터에만 있던 파일을 팀이 함께 보는 공용 창고에 올려 공유하는 행위를 말한다.
담을 내용은 거창하지 않다. 빌드·테스트 명령, 코드 규칙, 폴더 지도, ‘하지 마’ 목록, 자주 쓰는 용어. 한마디로 새 팀원에게 처음 알려줄 것들을 문서로 박아두는 것이다. 이건 코드 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문의는 이렇게 답하고 어떤 보고서는 이 순서로 정리한다는 업무 규칙도 똑같이 문서로 남길 수 있다. 반복되는 일을 규칙으로 남기면 왜 남는 장사인지는 지난 글에서 자세히 다뤘다.
에이전트는 꼭 거창하게 만들 필요 없다
보리스가 말하는 ‘에이전트 여러 개’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도는 작업 하나하나를 여러 개 굴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에이전트는 ‘자율 작업 단위’, 즉 알아서 굴러가는 일감 하나를 가리킨다. 에이전트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알아서 도는 일감 하나다. 이 오해를 풀면 진입장벽이 확 낮아진다.
자율 작업 단위를 만드는 방법은 다섯 가지나 된다. AI와의 대화창 하나, 작업 폴더별로 따로 연 대화창, 역할을 나눈 보조 AI, 예약해두고 알아서 도는 작업, 정해둔 절차를 한 번에 실행하는 명령. 이 중 무엇이든 병렬로 여러 개 굴리면 그게 ‘에이전트 여러 개’다. 이때 자주 쓰이는 게 worktree인데, 같은 프로젝트를 폴더 여러 개로 복제해 AI마다 자기 작업 공간을 따로 주는 방식이다. 서로 안 부딪치게 각자 방을 하나씩 주는 셈이다.
그렇다면 언제 거창하게 만들어야 할까. 핵심은 지속성이다. AI와의 대화 한 판(세션)은 닫는 순간 그때의 판단과 맥락이 증발하고 결과물만 남는다. 그래서 작업을 그때그때 대화로만 처리하면 노하우가 개인의 대화 기록에만 남고, 사람이 바뀌면 소실된다. 여기서 두 갈래 전략이 나온다.
승격 기준은 단순하다. 세 번쯤 반복되고 방식이 굳으면 그때 자산으로 만든다. 절차라면 명령으로, 역할이라면 보조 AI로, 지식이라면 규칙 문서로 남기면 된다. 양쪽 다 함정이 있다. 너무 일찍 만들면 아직 쓸지도 모를 걸 관리하느라 품만 들고, 너무 늦으면 매번 같은 걸 처음부터 다시 만든다. 결국 일회용으로 하다가 반복되는 걸림돌을 자산으로 굳히는 이 리듬이, 보리스가 말한 ‘걸림돌 제거 더하기 안전장치’의 실제 모습이다.
정리
이번 이야기의 핵심은 셋이다. AI 도입은 다섯 단계이고, 칸이 오를수록 한 사람이 굴리는 AI가 열 배씩 늘며 역할은 ‘직접 하기’에서 ‘방향 정하기’로 바뀐다. 다음 단계로 가는 열쇠는 더 많이 쓰는 게 아니라 걸림돌을 없애고 믿고 맡길 안전장치를 세우는 것이다. 여러 명이 따로 쓰면 노하우가 흩어지지만, 반복되는 일을 팀 공용 규칙과 자산으로 남기는 순간 팀 전체가 같이 한 칸 오른다.
결국 단계를 가르는 건 AI를 얼마나 많이 쓰느냐가 아니라, 반복을 자산으로 바꾸는 습관이다. 오늘 우리 팀이 매번 똑같이 설명하고 있는 일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게 바로 다음 칸으로 오르는 첫 계단이다. 자가진단은 거기서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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